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스크랩] [Flute Concerto] - C.P.E. Bach

클래식 이야기 ♬

by 예인예술기획 2014. 3. 7. 09:30

본문





[Bach C.P.E.:Flute Concerto] -Machiko Takahashi



Carl Philipp Emanuel Bach(1714~1788)는 전기 고전주의시대의 음악을 주도한 작곡가들 중의 한 사람으로, Johann Sebastian Bach와 전 부인 Maria Barbara와의 사이에 태어난 두 번째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였던 C.P.E. Bach는 아버지 J.S. Bach를 계승해서 음악가로서 독자적인 위치를 확립한 'Bach家'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성 토마스 교회 부속학교에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17세 때 최초의 미뉴에트를 자신이 직접 판을 만들어 출판했다. 그 후 착실하게 법률공부를 한 다음 1738년 프로이센 황태자의 오케스트라에 쳄발로 주자로 입단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작곡과 건반악기 연주를 위해서 아버지 외에는 선생을 둔 적이 없었다."
라고 말할 정도로 아버지를 절대적인 존경과 사랑으로 대했다.

1740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베를린 궁정예배당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C.P.E. Bach를 임명했다. 훌륭한 플루트 연주자이기도 했던 프리드리히 2세는 월요일과 금요일을 제외한 매일저녁 협주곡의 밤을 마련해서 궁정악단과 함께 협주곡을 연주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는 그 에게 지나치게 복종할 것을 요구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1767년 代父인 Georg Philipp Telemann이 사망하자 베를린을 떠나서 텔레만의 뒤를 이어 함부르크의 음악감독이 되었으며, 1768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지위에 있었다.
텔레만은 C.P.E. Bach가 태어났을 때 그의 대부가 되어 자기의 'Philipp'을 이 아이의 이름 가운데 넣어주었을 뿐만이 아니라 그의 죽음에 임해서는 자기의 후계자로 추천했다.
C.P.E. Bach는 그 후 자신의 후계자에 텔레만의 손자인 Georg Michael Telemann을 추천해서 그 은혜에 보답했다.

C.P.E. Bach는 30년간 베를린의 궁정에서 프리드리히 대왕을 위해 봉직하였으므로 '베를린의 바하'라 불리기도 하고, 그 이후 함부르크시의 음악 총감독을 21년간 역임하였으므로 '함부르크의 바하'라 불리기도 한다.
이곳에서 그는 헨델의 메시아, 아버지 바흐의 미사곡 b단조, 하이든의 스타바트 마테르를 연주함과 동시에 자신도 직접 많은 종교곡을 작곡했다.

함부르크 시대의 작품으로는 오라토리오 'Die Israeliten in der Wuste'(황야의 이스라엘인, 1775), 'Die Auferstehung und Himmelfahrt'(예술의 부활과 승천, 1777~1778), 클라비어를 위한 일련의 신작 식자와 애호가를 위한 소나타, 론도, 환상곡 전6권(간행 1779~87), 실내악곡, 교향곡 10곡(그가 작곡한 교향곡의 반수) 등이 있다.
교향곡 10곡 중 6곡은 반 슈비텐 남작의 의뢰로 작곡된 현악을 위한 작품(1773)이며, 나머지 4곡은 대오케스트라를 위하여 작곡되어 1780년에 발표되었다.

C.P.E. Bach의 음악적 재능은 연주자로서 뿐만 아니라 '건반악기 연주법에 관한 소고'라는 책을 출판하는 등 작곡가로서 또 존경받는 스승으로서 다른 음악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큰형인 Wilhelm Friedemann Bach와는 달리 아버지 J.S. Bach의 강력한 영향력을 적절하게 잘 소화해서 당시 새롭게 싹트고 있던 새로운 음악형식에 결합시켰고, 새로운 차원의 음악을 발표했다.
이 결과 기념비적이고 웅대한 바로크 음악은 그 당시 '감정과 다성의 음악'이라고 즐겨 표현한 낭만주의가 나타나는 계기를 만들었다.
C.P.E. Bach는 또한 종교음악, 교향곡, 협주곡, 오르간 소나타, 실내악, 노래 등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는데, 진취적인 성향을 보여서 미래지향적인 작품들을 만들기도 했다.
이 밖에도 소나타형식을 발전시키는데 선구자로서 F.J. Haydn, W.A. Mozart, Ludwig van Beethoven의 음악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는 기악의 거장으로서 특히 클라비어의 명수로서 급속하게 두각을 나타내어 이 영역에 한 시대를 구축했다.
그 대표작으로는 프로이센 소나타(1742), 뷔르템베르크 소나타집(Wurttembergische Sonaten, 1744), 변화된 반복을 가진 소나타(Sonaten mit veranderten Reprisen, 1760) 및 저작 올바른 클라비어 주법에 관한 시론(Versuch uber die wahre Art, das Clavier zu spielen, 1753) 등이 있다. 이 시론은 18세기의 음악양식을 아는 데 기본이 되는 것이다.

C.P.E. Bach의 유산 중에는 'Bach家'에 대한 오리지널 자료의 대부분이 남아 있었다. 형인 빌헬름 프리데만의 경우와는 달리 그는 생존 중에 작곡한 대부분의 작품을 간행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 그에게 소나타를 배운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그를 매우 존경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하이든은 여러 가지 면에서 그의 후계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50곡 가량의 클라비어 협주곡을 작곡했으며, 피아노 협주곡의 선구자가 된 그는 극적 색채가 뛰어난 급격한 조바꿈이나 의표를 찌르는 리듬에 의해서, 또는 종종 변덕스런 서법에 의해서 감정과 다양식의 가장 대표적인 존재가 되었다.
음악가가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감동했을 때만이 가능하다고 그는 즐겨 말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현대의 모든 시인들이 레치타티보의 성격을 가진 그의 어떤 클라비어곡의 음표에 맞추어 햄릿의 모놀로그 대사를 할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특히 좋아한 악기는 클라비코드였다. 그의 作品群 중에서 부당하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장르 중에 클라비어의 반주가 딸린 큰 성악곡집 頌歌와 가곡이 있다.

그는 갈랑트리라 불리는 당시에 유행하던 우미함에만 연연해하지 않은 음악가로서 새로운 소나타 형식의 달인이라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 풍부한 창작에 의해서 18세기 중기의 전체와 후기의 상당한 부분을 커버할 수가 있었던 당시의 유일한 음악가였다.

大 Bach, Johann Sebastian Bach가 죽은 후 최초로 그의 작품에 대한 종합적인 목록과 함께 그의 일생을 집대성한 것은 Carl Philipp Emanual Bach와 그의 제자 J.F. Agricola에 의해 1751년 이전에 이루어졌으며, 이는 1754년에 Nekrolog(과거장 : 과거에 대한 기록)으로 출판되었다.
그는 당대에 아버지 J.S. Bach보다 명성이 높은 음악가였으며 지금까지도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자주 연주되고 있다.

-(오래되어 글의 출처를 모르겠는데, Bach家의 남자 중 내가 제일 좋아한다. ^^)








01. Flute Concerto In B Flat WQ 164:1. Allegretto


02. Flute Concerto In B Flat WQ 164:2. Largo E Mesto


03. Flute Concerto In B Flat WQ 164:3. Allegro Moderato


04. Flute Concerto In D Minor WQ 22:1. Allegro


05. Flute Concerto In D Minor WQ 22:2. Un Poco Andante


06. Flute Concerto In D Minor WQ 22:3. Allegro Di Molto


07. Flute Concerto In E Flat Major WQ 165:1. Allegro


08. Flute Concerto In E Flat Major WQ 165:2. Adagio Ma Non Troppo


09. Flute Concerto In E Flat Major WQ 165:3. Allegro Ma Non Troppo



♬ 전곡 듣기






출처 : 없음
글쓴이 : 없음 원글보기
메모 :

관련글 더보기